눈치 보며 쪼개 쓰기 싫어서 저지른 일
한국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건 외국계 기업 다니는 친구들의 장기 휴가였다. 2주씩 이메일 자동 답장을 걸어두고 떠나는 모습이 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입사 4년 차, 대리 직급을 달고 나서 나도 결심을 했다. 찔끔찔끔 금요일 하루, 월요일 하루 쉬는 건 몸만 피곤했다. 마침 추석 연휴와 주말이 징검다리로 엮인 황금연휴가 다가왔다. 앞뒤로 연차 9개를 붙이면 주말 포함 총 16일의 휴가가 생기는 마법 같은 일정이었다.
프로젝트 마무리가 선사한 2주의 자유
물론 계획을 세울 때부터 심장이 쫄깃했다. 부서 내에서 "아니, 대리가 2주나 자리를 비운다고?" 하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3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했다. 내가 자리를 비워도 팀원들에게 업무 전가가 최소화되도록 미리 매뉴얼을 만들었고, 담당하던 상반기 메인 프로젝트는 휴가 출발 이틀 전에 완전히 마무리지었다. 인수인계 메일을 꼼꼼하게 정리해 발송한 뒤, 부장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부장님은 "가서 일 생각은 아예 하지 말고 잘 쉬다 와라"며 의외로 쿨하게 보내주셨다.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스마트폰의 업무용 메신저 알림을 껐다. 로마의 노천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을 올려다보며 보낸 2주는 내 직장 생활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책상 위에 업무가 좀 쌓여 있긴 했지만, 충전된 에너지는 다음 1년을 버틸 원동력이 되었다. 연차를 몰아 쓰는 건 민폐가 아니다. 업무 인수인계만 미리 확실하게 해두면, 누구든 누릴 수 있는 정당한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