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3개월 차 신입, 반차 올리던 날의 심장 박동수

2026.06.11

책상 위 달력과 펜

"저... 대리님, 혹시 다음 주 수요일에..."

대기업 입사 후 첫 3개월은 매일이 살얼음판이었다. 출근해서 메일함을 열 때마다 가슴이 뛰었고, 복도에서 상사를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허리가 90도로 꺾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동창 녀석들이 평일에 모인다는 소식이 들렸다. 해외에서 잠깐 귀국하는 친구가 있어서 이번이 아니면 보기 힘들었다. 달력을 보니 마침 수요일 오후가 비어 있었다. 입사하고 처음으로 '연차'라는 걸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정확히는 오후 반차였다.

결재 버튼을 누르기까지의 108번뇌

반차 기안서를 올리기 전, 내 모니터 화면에는 1시간째 결재 창이 띄워져 있었다. 사유란에 뭘 적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개인 사정'이라고 적자니 성의 없어 보이고, '친구 모임'이라고 쓰면 정신 빠진 신입사원 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옆자리 사수 대리님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폈다. 마침 대리님이 커피를 타러 갈 때 슬쩍 따라나섰다. "대리님, 혹시 다음 주 수요일 오후에 급한 회의가 있나요? 개인 사정으로 오후 반차를 좀 쓸까 해서요..." 목소리가 모기만 했다. 대리님은 대수롭지 않게 "어, 써요. 기안 올려놔요"라고 답했다. 그 한마디에 얹힌 체증이 쑥 내려갔다.

결국 사유란에는 그냥 '개인 사유'라고만 적어 결재를 올렸다. 연차는 법적으로 구체적인 사유를 밝힐 의무가 없으니, 굳이 없는 일을 지어낼 필요가 없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부장님까지 결재가 완료된 파란색 '승인' 글자를 확인했을 때의 그 쾌감이란. 막상 당일 오후 2시, 짐을 싸서 사무실 문을 나설 때는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이 들었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날아갈 것 같았다. 평일 대낮의 지하철역 출구는 유난히 밝고 한적했다. 신입사원에게 반차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회사라는 거대한 성벽에 작은 구멍을 뚫고 탈출하는 짜릿한 일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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